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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타인의 영향력
    서평 2019. 6. 28. 22:12

    당신은 독립적인 존재가 아니다.

     

     인간은 혼자서 살 수 없다. 알게 모르게 여러 사람들의 도움을 받고 때론 도움을 주면서 살아간다. 우리는 자신의 의지대로 삶을 주도한다고 여기지만 정말 그럴까? 우리는 우리가 놓인 상황, 특히 주위의 사람들에 의해 짐작보다 훨씬 더 많은 영향을 받는다. 이 책은 다양한 사례를 통해 나에 대한 타인의 영향력을 확인시켜준다.

     1997년 다이에나 왕세자비가 파리에서 자동차 사고로 사망했을 때, 영국 국민들은 마치 개인적으로 다이애나를 알았던 것처럼 슬퍼했다. 100만 명이 웨스트민스터 사원까지 긴 장례행렬을 이루었고 자택 대문 앞에는 조화가 높이 쌓여 밑바닥의 꽃이 썩기 시작했다. 모르는 사람들끼리 서로 위로하고 안아주었다. 그들은 마치 다이에나를 개인적으로 알고 지냈던 사람처럼 행동했다. 이런 현상을 ‘감정전염’ 이라고 한다. 생각 없이 기분과 감정에 동조하는 현상이 집단 전체로 확산되는 현상이다.

     비슷한 사례로 1930년 미합중국은행이 파산한 사건이 있다. 한 상인이 미합중국은행 지점에 들어가 자기가 보유한 주식을 처분해달라고 요청하자 지점장이 이를 만류하였다. 상인은 악감정을 품고 업계 동료들에게 그 은행이 어려운 처지에 있다는 소문을 퍼뜨렸고 몇 시간 만에 수백 명이 해당 지점으로 몰려들어 예금을 인출하려고 했다.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예금을 찾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공포의 감정이 전염된 것이다. 결국 다른 지점들에서도 대규모 뱅크런이 발생했고, 미합중국은행은 두 번 다시 문을 열지 못했다.

     우리는 사회적 영향에 휩쓸리기 쉬운 존재다. 이것은 무의식의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다. 한 연구에 의하면 우리가 음식을 먹는 양은 같이 식사하는 상대가 먹는 양에 의존적이다. 심지어 동시에 포크를 입으로 가져가는 경향도 있다고 한다. 이는 곧 사회적 모방, 한 사람이 자기도 모르게 상대방의 버릇을 흉내 내는 흔한 현상의 사례이다. 피츠버그 대학교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는 사람들이 21밀리초 만에 상대의 동작을 모방했다고 한다.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의 사례를 통해 동조 행위의 무서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다. 아이히만은 2차 세계대전 중 유대인 수십만 명을 죽음의 수용소로 수송하는 절차를 고안한 인물이다. 사람들은 아이히만에게서 악마와 같은 모습을 기대했으나 실상 그는 무표정하고 차분하고 잘 정돈된 모습의 평범한 사람이었다. 아이히만은 실제로 법정에서 ‘맡겨진 일을 열심히 했을 뿐’ 이라고 주장했다. 다만 자신이 한 일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역사가 데이비드 세자라니는 “아돌프 아이히만을 이해하기 위한 열쇠는 그 사람이 아니라 그를 사로잡은 신념과 그런 신념이 범람한 사회, 그런 신념을 공급한 정치체제, 그리고 그런 신념을 용납한 환경에 있다”고 이야기한다. 독일의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 또한 아이히만의 증언을 예로 들면서 악의 평범성‘ 이라는 개념을 소개한다. 가장 추악한 범죄는 주로 본래 악하게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주어진 상황에서 도덕적 판단을 포기한 사람들이 진지하게 성찰하지 않고 무심히 저지른 범죄라는 것이다. 이 말은 우리 각자에게도 아이히만이 있고 적절한 조건이 주어지면 발현할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이다.

     밀그램의 복종 실험 또한 악명이 높다. 이 실험은 교사, 학습자, 실험자 역할의 3명으로 구성된다. 실험자는 교사를 15볼트~450볼트 간격의 스위치 30개가 일렬로 붙은 거창한 전기충격 장치 앞에 앉는다. 옆방에는 손목에 전극을 붙인채 의자에 묶여있는 학습자가 있다. 교사는 학습자에게 인터컴으로 문제를 내고, 오답을 말할 때마다 전기충격을 준다. 15볼트에서 시작해 오답이 나올 때마다 충격의 강도를 높인다. 이 실험은 평범한 사람이 권위자로부터 타인에게 고통을 가하라는 지시를 받으면 어디까지 이행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설계되었다. 여기서 권위자는 실험자 역할을 한 사람으로, 학습자가 문제를 틀릴때마다 교사에게 전기충격을 줄 것을 강하게 요구한다.

     학습자는 75볼트에 이르면 끙끙 앓는 소리를 내며 교사에게 고통스럽다는 뜻을 알린다. 120볼트에서 소리를 지르고, 150볼트에서 실험을 멈춰달라고 요구하고, 270볼트에서는 교통스러운 비명을 지른다. 마지막 330볼트에 이르자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꿈쩍도 하지 않는다. 그런데 사실 학습자는 전기충격을 전혀 받지 않는다. 학습자의 반응은 단지 교사가 실험자의 요구에 따라 실행에 옮기는 의지를 알아보기 위한 책략일 뿐이다. 이 실험의 결과는 가히 충격적이다. 참가자의 62.5퍼센트 이상이 최대 전압까지 계속 전기충격을 가했다. 그들은 학습자의 고통을 무시하고 자기가 하는 행위에 대한 도덕적 갈등을 무시했다.

     밀그램 실험의 독창성은 동조경향의 미묘한 차이를 추출하기 위해 실시한 40여 가지 변형 실험에 있다. 관료처럼 보이는 실험자를 평범하게 생긴 남자로 교체하는 등, 귄위라는 요인을 제거하자 끝까지 복종하는 참가자가 반 정도 감소했다. 옆에 동료를 두어 동료가 실험자의 말에 저항하도록 하자 권위에 저항하는 두려움이 줄어들었다. 이렇게 사소한 차이로도 사람들의 행동이 크게 바뀌었다. 후속 실험에서는 전기충격 장치를 조작하는 역할을 다른 사람에게 넘기고, 참가자에게는 관리자 역할만 맡겨 행동에서 한걸음 물러나게 했다. 이 실험에서는 참가자의 90퍼센트 이상이 실험을 계속 진행하여 최대 전압까지 올렸다. 아이히만의 경우와 같이 폭력의 부속품이 되면 직접 방아쇠를 당길 때보다 양심의 가책이 줄어드는 것 같다. 밀그램의 실험은 평범한 사람도 결코 평범하지 않은 잔혹한 짓을 저지를 수 있으며, 특정한 조건이 주어지면 굴복할 가능성이 훨씬 더 커진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는 앞에서 설명한 ‘악의 평범성’과도 일맥상통한다.

     흔히 우리는 동료의 압력을 뿌리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다수앞에 혼자 있으면 생각보다 훨씬 더 어렵다. 혼자 떨어져 있으면 조롱당하거나 배척당할 수 있는데, 사람은 본능적으로 이런 상황을 피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지난 20년 동안 이루어진 일부 현장 연구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자살테러범 또한 놀라울 정도로 평범한 사람이다. 이들의 행동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은 개인의 배경이나 성격보다는 집단의 힘에 이끌리거나 조종당하는 방식이다. 자살 테러범 대다수에게는 대중의 의견에 쉽게 휩쓸리고, 묵묵히 권위에 복종하는 성향이 있다고 한다. 그들은 자신이 인생의 낙오자라는 느낌을 안고 있으며 거절을 두려워하고 남을 기쁘게 해주고 싶어하는 성격의 소유자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자살 테러범을 국가 영웅으로 칭송하고 위대한 전사가 되도록 압력을 가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이제 영웅에 대해 알아보자. 연구에 의하면 자신의 안전이나 동료의 인정을 희생하면서 남을 돕는 사람들은 대부분 의외로 평범하며, 영웅적인 행위 또한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일상적으로 일어난다고 한다. 2차 세계대전 중 프랑스의 르 샹봉쉬르-리뇽 마을 주민들은 유대인을 포함해 나치 정권을 피해서 도망치던 수천 명에게 피난처를 내주었다. 그들은 4년에 걸쳐 공포를 조장하고 협박을 굴복하게 만드는 모든 시도에 맞섰다. 시골에 숨겨둔 피난민들을 찾아내려고 급습하는 경찰을 교묘하게 따돌렸고, 위조 신분증을 마련해서 피난민 수백명을 스위스로 들어가도록 했다. 왜 프랑스 대부분의 지역이 나치 정권에 굴복할 때 르 샹봉 마을은 저항했을까? 그들의 불복종 행위에는 몇 가지 눈에 띄는 특징이 있다. 그들 다수가 연민과 공정성, 개인적인 책임 같은 기본 가치를 공유했다는 점이다. 명령을 거부한 부류와 나머지 사람들 사이의 주된 차이는 그들 스스로를 실험자가 아니라 희생자에게 고통을 주는 주요 책임자로 간주한다는 데 있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사회심리학자들은 한 가지 사실을 증명해왔다. 인간이 사회의 힘에 취약하다는 사실을 더욱 명확히 인식하지 못하면 앞으로도 집단 학살이나 살인적인 정권을 막아낼 길이 요원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우리의 일상, 즉 이사회와 위원회, 국가행정부와 지역사회 단체, 대학 동아리 등에서 우리를 압도하는 동조자들의 압력에도 해당된다. 심리학자들은 우리가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마다 스스로에게 이렇게 물어보라고 요구한다. 나는 이 일이 옳은 일이라서 하는가, 아니면 주위 사람들이 옳다고 느끼게 해줘서 하는가?

     살펴본 바와 같이 우리의 행동을 결정하는 힘은 매우 강하고 우리의 통제를 넘어설 때가 많다. 여러가지 케이스를 통해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되었고, 앞으로의 의사결정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한편, 생각 없이 집단의 규범에 순응하거나, 아무런 의문을 품지 않고 권위에 복종하는 사람들에 의해 커다란 악행이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이 두렵기도 하다. 영웅과 악당은 영화에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나 또는 바로 옆에 있는 사람일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생각하고 스스로 판단해야만 한다.

     이러한 취약점에도 불구하고 사회성은 인간을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요인이자, 우리를 인간이라는 종으로 정의하는 기준이다. 인간의 뇌는 타인에게 다가가고 사람들과 소통하도록 연결되어 있다. 이런 식의 사회 적응이 우리를 지구상에서 가장 성공한 종으로 만들어주었다. 우리는 다양한 흐름에 휩쓸리지만, 우리를 우리로 만들어주는 존재는 함께 헤엄치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결코 독립적인 존재가 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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