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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냉정한 이타주의자
    서평 2019. 6. 16. 07:32

    ‘선행’이라는 이유로 간과되었던 효율성‘의 재조명

     냉정한 이타주의자. 제목부터 모순이 있어 보인다. 내가 생각하는 이타주의자는 냉정하지 않고 따뜻한 감성을 앞세워 남을 도와줄 것 같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다음 사례를 한번 살펴보자.

     플레이펌프는 뺑뺑이와 펌프 기능을 결합시켜 기구를 돌릴 때 발생하는 회전력으로 지하수를 물탱크까지 끌어 올리는 기기이다. 이를 아프리카에 설치하여 아이들이 놀이를 하면서 부수효과로 물을 수급할 수 있게 하자는 취지로 개발되었다. 플레이펌프의 보급을 주도한 트레버 필드가 세계은행 시장개척상’을 받자 플레이펌프에 관심이 집중되었고, 이후 플레이펌프는 대규모 투자를 받아 아프리카 전역에 수천대가 설치되었다. 하지만 곧 문제점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 누구도 이 기기의 실질적 효과를 진지하게 검토하지 않았던 것이다. 아이들이 동력을 공급하기 위해 쉴 새 없이 힘을 가해 기기를 돌리다 금세 지치고 말았다. 부상을 입거나 구토 증세를 보인 아이들도 있었다. 심지어 플레이펌프는 기존의 수동펌프보다 효율이 떨어졌으며, 물이 필요한 마을 주민들은 기존보다 훨씬 더 오랜시간 펌프질을 해야만 했다. 결국 플레이펌프는 방치되었고, 실패한 기술이 되었다.

     이와 같이 좋은 의도가 나쁜 결과를 낳는 일이 종종 벌어진다. 그래서 책의 저자는 따듯한 가슴에 차가운 머리를 결합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이타적 행위에 데이터와 이성을 적용해야 비로소 선한 의도가 좋은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이 책을 관통하는 주제인 효율적 이타주의‘ 와도 상통한다. ‘내가 가진 능력으로 세상을 얼마나 바꿀 수 있을까?’를 자문하고 증거와 신중한 추론으로 그 해답을 찾아 나가야 한다.

    저자는 효율적 이타주의의 핵심 질문 5가지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큰 혜택이 돌아가는가? 이것이 최선의 방법인가? 방치되고 있는 분야는 없는가?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성공 가능성은 어느 정도이고 성공했을 떄의 효과는 어느 정도인가? 5가지 질문에 답하다 보면 우리가 남을 도울 때 쉽게 빠지는 함정을 피할 수 있다.  

     나는 세번째 질문-방치되고 있는 분야는 없는가? 을 통해 재해구호에 기부하면 안 되는 이유에 대한 저자의 주장이 인상깊었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자연재해에 대응하는 방식을 보면 우리가 남을 도울 때 감정에 휘둘리며 기존 문제보다 새로운 사건에 더 큰 관심을 보인다는 것이다. 재해가 발생하면 이에 자극받은 우리 뇌의 감정 중추는 재해를 긴급상황‘ 이라고 인식한다. 실은 긴급상황이 늘 발생하고 있다는 생각이 미치지 않는다. 질병, 가난, 독재 등 일상적인 긴급 상황에는 감정이 무뎌져 있기 때문이다. 재해는 새롭고 극적인 사건이기 때문에 한층 강력하고 즉각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재난 사고를 접했을 때는 일단 울컥 솟는 감정을 억누르고 유사한 재난이 항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 그리고 세상의 관심이 온통 쏠린 곳이 아니라 당신의 돈이 ‘가장 큰 보탬이 될 곳’ 을 찾아야 한다.

     ‘기부를 위한 돈벌이’ 라는 개념도 기억에 남는다. 남을 돕기 위해 의사가 됐을 때의 타인에 대한 효용과 다른 직업으로 돈을 벌어서 순수하게 금전적으로 기부했을 때의 효용을 비교하여, 효용이 더 큰 쪽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비록 자기가 직접적으로 환자를 치료하지 않더라도, 돈을 기부함으로써 다른 사람에게 더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선택을 한다는 것은 철저하리만큼 결과중심적이다.

     책의 두번째 파트에서는 효율적 이타주의의 실천 해법에 대한 내용으로 구성된다. 이 중차라리 노동착취 공장 제품을 사라‘ 는 주장은 특히 파격적이다. 사람을 착취하는 공장의 제품을 사라니, 오히려 불매운동을 해야 할 판이 아닌가. 그러나 감정을 배재하고 판단을 해보면 여기에는 보이지 않는 면이 있다. 노동착취 공장 제품을 사지 않으면 그 공장의 노동자는 어떻게 될까? 더 나은 일자리를 얻을 수 있을까? 안타깝게도 가난한 나라에서는 노동착취 공장이 좋은 일자리라고 한다. 그래서 노동착취 공장의 노동자들은 자발적으로 이를 선택한 사람들로 구성된다. 이들이 일자리를 잃게 되면 결국 더 열악한 환경에서 일을 할 수 밖에 없다. 경제학자들은 노동착취 공장이 가난한 나라에 득이 된다는 데 의문을 달지 않는다. 제프리 삭스 컬럼비아대 교수는 내가 걱정하는 건 노동착취 공장이 너무 많다는 게 아니라 너무 적다는 것“ 이라 말했다. 노동착취 공장을 옹호하는 건 노동집약적 제조업이 저임금 농업 위주 경제사회가 더 부유한 산업사회로 나아가는 데 징검다리 역할을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책 제목인 ‘냉정한 이타주의자’ 에서 ‘냉정한’ 은 타인에게 냉정한 것이 아니라 선행의 결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이성적으로 판단하는 자세에서 나오는 냉정함이었다. (책의 원제는 ‘Doing Good Better’ 이다) 나는 매달 적은금액을 기부하고 있지만 그 금액을 모금하는 자선단체가 어떤 단체인지, 또 기부금이 어떻게 사용되는지 크게 관심을 갖지 않았다. 기부행위 자체가 선행이므로 '좋은일을 한것' 만으로 만족했던 것이다책을 읽고 이러한 부분에 대해 조금 반성하게 되었다자선단체의 선정부터 기부금의 사용출처까지 고려해야할 요소가 많았는데 말이다. 내가 기부한 금액이 남을 돕는데 쓰이는 것이 아니라 엉뚱한 곳에, 또는 불필요한 곳에 사용된다면 나의 행위가 선행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작은 기부도 이정도니 규모가 큰 자선사업은 더욱 데이터 위주로 신중하게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자기만족에서 그치는 것이 아닌 진정한 선행을 행하는 데에는 결과에 대한 냉철한 계산이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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