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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의 배신] 내 뱃살이 빠지지 않는 이유서평 2019. 9. 22. 18:10
자연선택에 의하면 특수한 환경에서 생존에 적합한 형질을 지닌 종이 그렇지 않은 종에 비해 생존과 번식에 더 유리하다. 이는 인류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과거 인간은 야생에서 매우 연약한 존재였기 때문에 생존에 근본적으로 필요한 방어 기제가 없이는 생존이 불가능했다. 대표적인 방어 기제로 배고픔, 갈증, 두려움, 혈액 응고 능력 등이 있는데 이러한 기제가 없는 인류는 생존력이 매우 떨어져 후대에 유전자를 남기지 못하고 도태됐을 것이다. 반대로 이러한 방어 기제를 가진 개체의 유전자가 계속 후대로 전해졌을 가능성이 높다. 그 후손이 바로 현대 사회를 살고 있는 우리다.
19세기까지만 해도 위에서 언급한 유전형질로 인류를 관통하는 가장 큰 사망 요인 – 굶주림, 탈수, 폭력, 출혈의 위험을 피하고 생존 확률을 높일 수 있었다. 그런데 20세기 이후의 현대 사회는 과거와는 너무 많이 달라졌다. 20만 년의 긴 세월 동안 우리 조상들이 살아온 세상은 매우 서서히 변해 왔으나, 불과 200년 전도 안되는 시점부터 인류는 뇌를 써서 세상을 극적으로 변화시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극적인 변화는 아주 서서히 환경에 적응해온 인류를 또다른 문제로 몰아넣었다. 이전까지 인류의 생존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방어 기제가 이제는 아이러니하게도 독이 되고 만 것이다. 그것들은 비만, 당뇨, 고혈압, 기타 정신질환 등을 기존에 없던 새로운 병을 유발하는 원인이 되었다.
새롭게 등장한 질병들 중 나와 관련이 큰 비만에 초점을 맞춰보자. 나는 어렸을 때부터 통통한 편이었고 신체검사에서 늘 과체중 판정을 받았다. 직장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운동과 식단조절을 병행해 어느정도 체중을 감량했으나 뱃살만은 결코 뺄 수 없었다. 체중을 어느정도 감량한 이후에는 허기짐과 공복감을 참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틈틈이 간식을 먹다보니 다시 체중은 늘고, 내 아랫배는 더욱 넉넉해졌다. 나의 의지력부족이라고 말하기에는 불가항력이 작용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몸이 내가 더 먹기를 원한 것이다.
과거 인류는 지금처럼 식량이 풍족한 시대에 살지 않았다. 언제 기근이 일어나 굶을지 모르기 때문에 음식이 풍부할 때 과식을 해서라도 남은 열량을 지방으로 축적하고자 했다. 굶주림은 개인뿐 아니라 생물 종 전체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기에 우리의 본능과 인체 내 조절 장치는 전부 과식을 해서라도 당장 필요한 것보다 더 많은 양을 흡수하는 쪽으로 기울었다. 이러한 유전형질 덕에 식량이 풍족한 현대 사회에서도 사람들은 필요 이상으로 먹는다. 그 결과 많은 인구가 비만이 되었다.
필요 이상 더 많이 먹고자 하는 DNA 덕에 많은 사람들이 체중 감량에 실패하고, 또 성공하더라도 요요 현상으로 다시 원래 체중으로 회귀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비만을 극복할 수 있을까? 이 책에서는 두가지를 제시한다. 첫번째로 우리 행동을 변화시킬 방법을 찾는 것이다. 비록 우리가 바꾸고 싶어 하는 행동들 가운데 많은 수가 우리 DNA에 새겨진 것들이라고 해도, 우리는 자유의지를 갖고 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체중 감량에 어려움을 겪긴 하지만 성공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두 번째는 현대 의학의 도움을 받아 우리의 체질 자체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비만이라는 카테고리를 놓고 봤을 때 일반 사람들이 과학의 힘을 빌기에는 갈길이 멀어 보인다. 미국에서 장기 비만 치료제로 승인을 받은 약은 5종에 불과하고 이마저도 부작용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뇌를 자극하거나 미각 세포를 속이는 방법은 인간에게 적용시키기에는 아직 너무 이르다. 장내 마이크로바이옴 조작 기술 또한 아직 확실한 결론에 도달하지 못했다. 살을 빼려고 위를 절제하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나는 첫번째 방법 – 내 행동을 변화시킬 방법에 집중하려고 한다. 우리 몸이 유전적으로 필요 이상 먹도록 설계되었다고 해도, 결국 더 먹을지 말지 선택하는 것은 나 자신이다. 필요 이상 먹는 것을 하나의 습관으로 인식하고 이 습관을 고치기 위한 노력을 해보면 어떨까? 마침 ‘아주 작은 습관의 힘’ 이라는 좋은 책에서 어떻게 습관을 고칠 수 있는지 배웠으니 이를 적용해볼 좋은 기회인 것 같다. 구체적인 계획과 목표를 설정하고, 중간에 다른 길로 새지 않도록 환경설정을 잘 한다면 10년묵은 내 뱃살을 빼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비록 과거로부터 축적된 유전적 형질이 현대 사회를 살고 있는 인류에게 적합하지 않다고 해서 낙담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인류는 여지껏 불가능을 극복하는 능력으로 스스로를 정의했다. 우리는 답을 찾을 것이다. 늘 그랬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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